고장난 블로우모터
7월 25일 오후 4시 경 친구를 태우고 김포에서 열리는 친구의 돌잔치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비가 내리기 직전의 덥고 습한 날씨여서 에어컨을 틀고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었죠. 그런데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블로우 모터의 소리가 쉬릭쉬릭 하며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곧 차량 정체 구간이 시작됐고 회색빛 구름이 잔뜩 끼어 있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한여름의 소나기인데 조금 내리다 말겠지라고 생각하며 거북이 걸음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서히 차안이 더워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창문에 성에가 끼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조기를 확인해 봤지만 액정은 멀쩡했습니다. 그러나 바람은 나오지 않더군요. 순간 저는 블로우모터가 고장난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조금씩 내리던 비가 그 때부터 억수로 내리기 시작하더군요. 와이퍼를 최고 속도로 가동해도 앞유리 너머가 잘 안 보이는 수준의 폭우였습니다(유막제거 및 발수 코팅을 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쏟아지는 비로 인해 차 안이 빗소리로 가득해서 목청을 높여야 옆자리 친구와 대화가 가능했어요.
가까운 자동차공업사로
멘붕이 와서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급한대로 친구에게 가까운 자동차공업사를 검색해 달라고 부탁했고, 친구의 안내를 받아서 이촌동의 어느 가까운 카센터로 갔습니다. 물론 앞유리에 낀 성에를 휴지로 닦아가며 조심해서 주행했습니다. 친구와 저는 습기와 더위로 인해 이미 땀 범벅이 되어 있었죠. 친구에게 정말 미안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갔더라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아무튼 오후 5시 반쯤 자동차공업사에 도착했고, 곧바로 사장님께 바로 송풍기 블로우 모터를 점검해 달라고 부탁 드렸습니다.
사장님께서는 글로브 박스를 탈거하고 블로우 모터에 꽂혀 있는 여러 케이블을 제거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삐 소리가 나도록 이리저리 접지를 해 보시더니 모터를 주먹으로 탕탕 치시더군요.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고장난 줄 알았던 모터가 쌩쌩 잘 돌아갔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장님께서는 이건 일시적인 현상이고 언제 다시 멈출지 모른다며 교체를 권하시더군요. 거기에다가 블로우 모터의 속도를 조절해 주는 저항 센서도 함께 교체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부르신 가격은 14만 원.
헐...
바가지인 걸 알지만 어쩌겠어요. 토요일 저녁 시간이라서 찾아갈 자동차공업사도 딱히 없고 갈 데가 있다고 해도 부품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기 때문에 도박을 할 수 없었죠. 어쩔 수 없이 여기에서 부품 교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입 안이 무척 썼지만 에어컨 없이 폭우를 뚫고 성에가 낀 자동차를 운전해서 김포까지 갈 용기는 없었습니다. 저는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사장님께 GO를 외쳤습니다. (눈물)
죽었다 살아난(?) 블로우 모터. 그러나 곧 교체되었다. |
비싸디 비싼 블로우 모터를 장착한 저의 애마는 가격만큼이나 고급스러운(?) 냉기를 뿜어내더군요. 덕분에 김포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습니다. 옆자리 친구는 절대 잊지 못 할 추억이 생겼다며 깔깔 웃더군요. 저도 못 잊을 것 같아요. 고온과 습기와 땀과 폭우와 블로우 모터가 함께 한 날을 말이죠.
댓글 없음:
댓글 쓰기